계획보다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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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보다 학습
  • 이병주 (주)더밸류컨설팅 대표
  • 승인 2022.03.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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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변화에 따라 학습하며 유리하게 만들어 가는 게 중요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의 아들이 위조한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 집에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갈 때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기택의 가족이 나름 치밀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계획과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기생충>은 이 세상은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다이내믹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요즘은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경영도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건 혼다 사례일 것이다.

1959년 혼다의 가와시마 기하치로는 미국 오토바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일본 교포가 많은 LA에 지사를 설립했다. 자금 부족으로 월세 80달러짜리 단칸방에서 모든 직원이 기거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어렵게 딜러상과 계약한 후, 미국에서 인기 있는 중대형 모델인 250cc305cc 모터사이클을 팔았는데, 곧바로 오토바이에서 오일이 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장거리 주행이 일반적이라 오토바이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고장 난 제품을 일본으로 실어 보내고 나니, 직원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사업도 안되던 터라 혼다 직원들은 교통비를 아끼려고 가져온 50cc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LA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이 오토바이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이 작고 귀여운 오토바이를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혼다 직원들은 할 일도 없고 가지고 온 돈도 다 떨어져가는 상황이라 이 제품을 팔기로 했다.

당시 미국 오토바이 시장은 중대형 제품밖에 없어서 딜러상들이 제품을 취급해주지 않아, 모터사이클 매장이 아니라 시어스 쇼핑몰의 스포츠용품 코너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제품이 대박을 쳤다. 그러자 혼다는 중대형 모터사이클 판매를 접고 경량 오토바이를 파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 미국 소비자들도 집 주변에서 볼 일 볼 때 주로 이걸 사용했고, 장거리 주행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할리 데이비슨 같은 거대한 오토바이는 주로 가죽잠바를 입은 폭주족이나 온몸에 문신을 한 거친 사내들이 이용했다. 혼다는 UCLA 학생이 낸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상냥한 사람들이 혼다 오토바이를 타지요라는 캠페인을 성공시켰고, 판매고를 더욱 올렸다.

 

학습이 더 중요하다는 혼다 효과

 

경영학자 리처드 파스칼은 훗날 혼다 미국법인 대표와 그룹 부회장까지 오른 가와시마를 인터뷰해서 혼다의 성공사례를 소개하며 혼다 효과(Honda Effect)란 용어를 만들었다. 치밀한 전략보다 상황 변화를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더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이런 사례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업무용 메신저로 인기가 높은 슬랙은 처음엔 온라인 게임 사업 개발을 위해서 사용하던 사내 메신저였다. 온라인 게임 사업은 실패했지만 의외로 내부에서 반응이 좋았던 슬랙을 제품화해서 성공했다. 지금은 유튜브의 아성까지 넘보는 게임방송 앱 트위치 역시 초기엔 창업자의 일상을 중계하는 스트리밍 TV였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방송을 스트리밍했는데, 이때 게임방송 중계가 가장 인기가 많은 걸 간파하고 게임방송 채널을 오픈하고 키운 것이다.

공모디자인을 티셔츠에 프린트해서 판매하는 스레드리스 역시 애초에는 웹 서비스 사업이었다. 마케팅 일환으로 진행했던 티셔츠 콘테스트 웹사이트가 반응이 좋아서 사업을 완전히 바꾼 케이스다. 스타트업만 사업 전환을 하는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티야 나델라 취임 후 윈도와 오피스의 제품 중심 비즈니스에서 클라우드 중심의 서비스 비즈니스로 사업을 전환했다.

혼다가 미국에 진출할 때 미국 소비자는 소형 오토바이가 없었으므로 삶에 필요한지 깨닫지도 못했다. 혼다의 전략 변화로 작은 오토바이의 쓰임새를 비로소 알게 됐고 열광했다. 이후 혼다는 배기량을 높이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의 스포츠 바이크를 출시했는데, 스피드를 즐기면서도 가벼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했다. 이처럼 혼다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을 사람들을 여럿 사로잡았다. 1960년대 말에 미국에서 오토바이 구매자 3명 중 2명이 혼다를 샀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오토바이를 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봉준호 감독 역시 <기생충>을 만들면서 아카데미상을 받을 계획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칸느에서 상을 타고 영화 개봉 후 각국 관객들이 열광하는 걸 보고 미국에서도 먹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은 계획과 다르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학습하며 유리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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