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김생, [김생서법전] 연 93세 김현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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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김생, [김생서법전] 연 93세 김현길 교수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4.04.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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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로 김생서체 연구와 따라쓰기 실천…첫 전시회
김생서법 전시회를 개최한 김현길 교수가 자신이 쓴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비문'을 설명하고 있다.<br>
김생서법 전시회를 개최한 김현길 교수가 자신이 쓴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비문'을 설명하고 있다.

신필(神筆)로 평가되지만 비문(碑文)에서만 확인되고 서지(書誌)로 발견되지 않고 있는 김생(金生)의 글씨. 그 김생체를 연구하고 써 온 원로 향토사학자가 있다. 그가 93세의 김현길 국립한국교통대학교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충주시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만승 김현길 김생서법전(萬升 金顯吉 金生書法展)’ 및 ‘김생서집(金生書集)’ 출간기념회를 함께 열었다. 그의 첫 개인전이다.

신필(神筆)로 평가되는 김생의 영정.   /김생서법자전(金生書法字展) 사진 갈무리
신필(神筆)로 평가되는 김생의 영정.   /김생서법자전(金生書法字展) 사진 갈무리

김 교수는 80세를 넘겨 서예를 시작하면서 김생체 쓰기에만 전념했다. 김 교수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공개한 작품은 명구(名句)류 12점, 시구(詩句)류 6점, 장문류 17점, 한글류 9점, 사군자 4점, 탁본류 4점 등 대회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김생의 글씨체로 그가 서예를 할 수 있는 것은 탁본 등을 통해 만든 ‘김생서법자전(金生書法字展)’이 있기에 가능했다. 2005년 발간된 김생서법자전은 충주에서 활동하던 ‘김생연구회’에서 발행한 것으로 편저자는 서동형 해동연서회 회장이며, 감수자가 김현길 교수다. 김생연구회는 1995년부터 충주에서 조직돼 활동하던 단체로 김 교수는 향토사학자로서 묘비 등을 찾아 진행한 탁본 등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그에 따른 결과물이 김생서법자전 발행이었다.

80넘어 시작한 서예

하지만 김생연구회는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동안의 연구물 등을 충주박물관에 기탁하고 사실상 해체된 상황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 교수는 노후 생활로 시작한 서예에서라도 김생체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 개인전까지 열게 됐다는 것. 이번 전시회는 주위에서 권유도 있었고 이왕이면 김생체 보급에 도움이 되고자 용기를 냈다고 한다.

김현길 교수가 김생서체로 쓴 '홍익인간 제세이화' 작품.
김현길 교수가 김생서체로 쓴 '홍익인간 제세이화' 작품.

특히 개인전 도록(圖錄)과 함께 공개된 <이행원 신도비 및 이현서 묘비>라는 제목의 ‘김생서집(金生書集)’ 책자에도 눈길이 쏠렸다. 도록에는 ‘김생서체에 대한 이해’와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실렸고, 김생서집에는 김생연구회 해체 이후 김 교수가 별도로 발견해 진행한 김생서체 탁본 및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이 새로운 김생서집은 앞서 김생연구회가 발간한 ‘김생서법자전’의 추보판인 셈이다.

전시회에 소개된 것 중에는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보물 제1877호) 비문, 전유암산가서 등 탁본으로 전해져 내려온 김생체의 글을 그대로 김 교수가 쓴 다수의 붓글씨 작품이 주목됐다. 많은 분량의 비문을 모두 담아 낸 작품들이다. 아울러 광개토대왕릉 비문, 조계묘비 비문 등과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유신의 기개에 대해서도 김생체로 써 놓았다.

지난 5일 열린 전시회 초대 행사에는 김 교수의 많은 후배 지역 향토사학자 등이 찾아 자리를 빛내고 축하했다. 김생연구회를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서동형 회장은 이날 김 교수와 활동한 김생연구회 성과를 설명했다.

서동형 서예가도 극찬

서 회장은 “김생연구회 활동 중 가장 큰 일은 김생서법자전을 2년 반 동안 걸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서 회장은 “교수님의 도움은 선구자적이었다”며 “자전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해 김생의 글씨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회에 새롭게 소개된 탁본의 김생서체를 김생서법자전 증보판 발행을 추진해 담아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김생사료전시관 필요성도 강조했다.

만승 김현길 교수의 작품과 인간 김현길에 대해 서 회장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갖춘 분”이라며 “80노구에 시작해 10여년간 오로지 김생서체만 썼다”고 높이 평가하며 경의의 박수를 이끌었다. 덧붙여 김생의 독창적인 서체를 언급하면서 “전국 모두가 중국 서법 위주로 간다. 우리 글씨를 써야 할 때”라며 “김생은 신품4현 중 한 분”이라고 기렸다.

김현
김현길 교수가 탁본한 이행원 신도비 비문. 김생체를 집자해 만든 비석문이다.

또한 20년 후배인 성기태 전 한국교통대 총장은 “교수님은 학자, 교육계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성 전 총장은 “충주 고구려비가 발견되었을 때 교수님이 탁본을 제안해 지금까지 보관하게 된 인연이 있다”고 덧붙이고 “100세 시대에 교수님의 전시회를 보고 가능성이라는 큰 의의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 제2의 김생이 출생하신 것 같다”며 “교수님의 호를 오늘부터 ‘김생’으로 불러드리고 싶다. 제2의 전시회를 기대한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졌다.

평생 연구자료 기증

특별히 이날 행사에서 충주문화원은 김 교수가 기증한 1만566권의 역사자료에 대한 기증서 및 기증도서목록 전달식을 진행했다. 유진태 문화원장은 “향토사학자로서 45년 동안 한 길을 가시면서 김생서체 보급에 일조하시고 구순 나이에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심에 찬사와 박수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1만1000여권의 귀중한 기증 자료는 많은 후배 사학자들이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생체로 만들어진 만덕산 백련사 현판의 탁본.

인사말에서 김현길 교수는 “많이 참석해 감사하다”며 “눈과 귀가 먹어가 어울리기도 멀어져 복지관에 나가 글씨 쓰기를 하게 됐다”며 “이왕에 하는 거 서법전도 있으니 쓰다 보면 보급에도 도움이 될까해서 김생의 글씨를 쓰게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생체를 쓰다보니 기본글씨도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3년 전 이행원 신도비 탁본을 한 것을 새책으로 만들었다”며 “오늘 전시회와 책자는 김생글씨 노력의 결과물로 봐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행사 시간 내내 서서 작품을 설명하는 등 후배들 못지않은 건강함을 과시했다.

향토사 연구자료를 기증한 김현길(왼쪽) 교수에게 유진태 충주문화원장이 기증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한편, 김생(711~791?)에 대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삼국사기, 한국미술전집 등의 자료를 근거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생은 통일신라시대 때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서예가다. 711년(성덕왕 10)에 태어나 안동의 문필산, 경주의 경일봉 석굴, 봉화 청량산 김생굴, 음성군 원통산 기슭의 김생암 등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김생(金生)조에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80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행서·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숙종 때 학사 홍관(洪灌)이 송나라 변경(汴京)에서 한림대조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에게 김생의 행초서 1권을 보이자, 양구와 이혁이 왕희지의 글씨라고 감탄하였을 정도로 명필로 전해진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생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하고 있다.

충주시 금가면 반송리에 있는 김생사지(金生寺址)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만승 김현길 교수의 '김생서법전'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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