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선을 넘어 사각지대 없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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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선을 넘어 사각지대 없애려면
  • 서재욱 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 승인 2022.06.29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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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가지로 나뉘어, 중간지대 어떻게 배려할까

사회복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사각지대’이다. 사각지대는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각지대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복잡하거나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제도를 홍보하고, 주변에서 신청을 돕거나 하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제도 자체의 선별성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제도의 성격 상 소득, 재산, 연령 등의 기준을 설정했을 때 그 기준선(threshold)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 중위소득’이다.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에 해당하면 생계급여를, 40% 이하에 해당하면 의료급여를, 46% 이하에 해당하면 주거급여를, 50% 이하에 해당하면 교육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

이는 바꿔말하면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1%, 41%, 47%, 51%에 해당하면 각각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소득보장의 경우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차상위계층’에 대한 조항이 있어 이들에 대해서는 자활급여, 전세임대, 취업, 장학금, 지원금 등에 대한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

‘회색지대’에 대한 규정 없어

그런데 모든 제도가 위와 같은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적 장애 여부에 따라 혜택이 제공되는 제도가 그렇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을 뿐 그 가운데 ‘회색 지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물론 허위로 장애인으로 등록하여 혜택을 받는 등 부정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제도의 특성 때문에 흑과 백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2개 집단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지적 장애의 기준을 지능지수 70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지능지수 75로 설정하고 있다. 같은 사람도 한국 국적을 가지면 비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일본 국적을 가지면 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기준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기준선의 윗 부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사각지대 해소의 차원에서 더 중요하다. 사실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첫 번째 유형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도 ‘비장애인’ 범주 안의 중간지대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작년 초 방영된 한 탐사프로그램에서는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한 20대 경계선지능인(지능지수가 71~84 사이에 해당하며 적응능력에 일부 손상이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가진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 뒤 몇 달 후에야 발견이 된 안타까운 사례를 다룬 적이 있다. 장애판정을 받지 않아 ‘비장애인’으로 분류되어 홀로 자신을 돌보던 모친의 사망 이후 거리에서 생활하다 우연히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어 구조된 지적장애인 청년의 사례도 비슷한 시사점을 준다.

중간지대 사람들을 위해 할 일

그렇다면 지적 장애와 비장애의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무엇보다 보편적이면서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자동차 중심의 도로를 사람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면서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늘리는 조치를 통해 보행약자의 이동권을 제고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행정과 편의시설을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느린 학습자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바꾸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갖추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시설에서부터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안내문과 설명서가 비치되어야 할 것이다.

느린 학습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쉬운 책’ 출판과 독서모임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직업훈련도 느린 사람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다양한 과정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빠른’ 학습자 중심의 문화적 환경을 ‘느린’ 학습자도 참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어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무언가로 규정하고 호칭하면서 구분 짓는 것은 늘 낙인의 위험을 안고 있다. 경쟁과 효율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누구든 뒤쳐진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서 한국말이 서툴거나, 난독증이 있거나, 하루 종일 힘든 일에 시달리는 사람들 모두 어느 순간 ‘느린 학습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책과 미디어매체는 이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지 못하다.

서재욱 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버스가 조금 늦더라도 교통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읽고 쓰는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발전해 있다. 한국에서도 장애인을 위해 설치한 지하철 승강기가 임산부와 노인을 포함한 교통약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느린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취미생활과 자기계발의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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