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 게임에서 반복 게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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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 게임에서 반복 게임으로
  • 이병주 (주)더밸류컨설팅 대표
  • 승인 2022.02.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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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 “일회성인 원샷 게임에서는 이기적, 반복 게임에서는 이타적인 선택해”

1915년 어느 날 서부전선. 새벽부터 연합군과 독일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한치의 양보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전장은 총성과 희뿌연 화약연기로 뒤덮였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쓰러지는 병사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아침 8시가 넘어서자 양 진영에서 약속이나 한 듯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 희한한 장면이 이어졌다. 연합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벙커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병사도 있었고 심지어 커피를 타 마시기도 했다. 간 큰 몇몇은 참호 밖으로 나와 적의 사정거리에서 서성거리며 휴식을 즐겼다. 이런 장면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부터 전쟁 내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솜 전투처럼 참혹한 공방이 이어지던 때에도 이런 양상이 나타났다.

1914년 전쟁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양쪽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싸워도 군인들의 희생만 커질 뿐 전쟁 양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서부전선은 그대로 고착화됐다. 양 진영 모두 벙커와 참호를 깊이 파고, 철조망과 흙으로 방어벽을 두른 채 참호전을 지속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양쪽 병사들은 자기파괴적인 전투를 스스로 자제하기 시작했다. 적의 식량 창고 쪽으로는 사격을 하지 않았으며,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올 때는 전투를 쉬었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는 가장 적대적인 공간에서 협력이 자생적으로 싹튼 것이다. 그것도 전사자가 600만 명이 넘게 나온, 가장 참혹한 전쟁터인 서부전선에서 그랬다.

사령관들은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이런 행동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고의적으로 전투를 피하는 병사들을 군법회의에 넘겼고, 중대 전체를 징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한번 나타난 협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발포 명령을 내려도 양쪽 군대는 엉뚱한 곳에 폭약과 탄알을 쏴댔다. 도대체 서부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은 사실 철저히 합리적인 사리 판단에서 나왔다. 전쟁이 참호전으로 고착화되면서 전쟁 양상이 한 번 싸우는 원샷 게임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결을 펼치는 반복 게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일회성인 원샷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반복 게임에서는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계속해서 상대방과 플레이를 해야 하는 반복 게임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한 참가자는 처음에는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이후에는 다른 참여자들의 견제와 응징으로 손해를 본다. 결국 피해를 입지 않고,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즉 이기적인 판단 끝에 이타적 협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털끝만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사람도 이웃에게는 잘한다. 이웃과는 반복적으로 만나야 하므로 평판과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에 비해 더 순하고 착한 이유도 시골에서 심성 고운 사람들이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집집마다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에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던 서부전선에서 협력이 싹튼 이유도 적과 반복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죽을 각오로 싸우다가는 결국 죽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목적이 달라져

 

갑자기 게임이론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날 비즈니스가 반복 게임 상황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어서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소비, 원격 근무 등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디지털 기술로 기업과 고객이 실시간 연결되면서, 기업은 고객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또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도 디지털 기술로 기업과 고객은 상호작용하게 됐다. 기업이 착해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고객을 봐야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이타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즉 디지털화는 경영의 목적을 뒤바꿔 놓았다. 과거 경영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파는 게 목적이었다. 이제는 판매를 넘어 제품 사용 활성화, 사용 만족 극대화가 목적이 됐다. 그래서 이제는 제품 판매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자동차를 멋지게 만들어서 팔고 나면 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동차를 팔고 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새로운 기술을 고객에게 제공해줘서, 고객이 자동차를 더 잘 사용하고 더 만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즈니스가 원샷 게임에서 반복 게임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얼마나 더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우리 제품을 얼마나 잘 쓰도록 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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