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산 이와 죽는 이 모두에게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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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산 이와 죽는 이 모두에게 숙제
  • 충청리뷰
  • 승인 2018.02.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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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윤의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과 유은실의 『마지막 이벤트』

심진규
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죽음’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도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슬픔이 먼저 떠오르는 ‘죽음’을 다루기에 어린이·청소년 문학은 적당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닐 바에는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어떨까? 어린이·청소년 문학에서 다루기 힘든 주제인 ‘죽음’을 다룬 두 작품을 소개해 본다.

열여덟 고등학생 ‘여여’는 엄마와 둘이 산다. 엄마는 미혼모이며 사진작가이다. 사람의 늙은 몸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목욕탕에 가서 할머니들의 늙은 몸을 찍는 것이 일이다. 그런 여여와 엄마에게 큰 시련이 닥친다. 엄마가 말기 암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엄마가 요양을 위해 시골에 집을 얻어 떠나고, 빈 집에 혼자 남은 여여. 집안이 너무 허전해서 뉴스를 켜고 소리를 키운다. 뉴스에서는 국제 유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제 유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둥근 무릎 위로 떨어졌다.
여여의 눈물은 곁에 있어야 할 엄마의 빈자리에서 오는 허전함이 아닐까? 가끔 말도 안 되지만 가족 중 누군가 없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제 열여덟인 여여는 오죽했으랴?

우리나라 현실에서 입시지옥에 사는 고등학생인 여여에게는 슬퍼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모의고사도 치러야 하고, 중간고사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여여에게는 드럼을 배우는 문화센터에서 만난 ‘시리우스’라는 남자친구가 생긴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엄마를 보러 시골에 가는 일을 미루기도 한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아빠의 존재에 대해 엄마에게 묻지만 엄마는 자신이 미혼모가 된 건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라는 말만 한다.

엄마 친구로부터 듣게 된 아빠의 존재. 대기업 임원인 아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딸도 있는 아빠. 아빠가 하는 강연회에 가서도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여여. 죽음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여여에게 아빠의 존재를 알지만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결국 엄마가 여여 곁을 떠난 날, 여여는 함께 영안실로 향하던 외숙모에게 한 마디 한다.
“외숙모, 배고파요.” 책을 읽는 내내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진다. 엄마를 보내고 여여는 자신만의 삶을 시작한다. 나 먼저 챙기고 다른 사람도 챙겨주라는 뜻의 이름 여여(나 여(余), 너 여(汝))처럼.

유은실의 『마지막 이벤트』는 2010년에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에서 나왔다가 2015년 ‘비룡소’에서 다시 출판이 되었다. 유은실 글에는 위트가 있다. 읽는 동안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쾅하고 뒷머리를 때리는 재주가 있는 작가이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6학년 영욱이는 할아버지가 참 좋다. 할아버지 얼굴에 난 검버섯을 만져야만 잠을 잔다. 할아버지 표시한 옹은 “일흔 아홉, 죽기 딱 좋은 나이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주름 펴는 크림, 검버섯 제거 크림을 바르는 할아버지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포토샵 처리해서 검버섯을 모두 없앨 정도로 컴퓨터도 잘 하는 신세대 어르신이다.

평소 소화가 안 된다며 영욱에게 활명수 심부름을 잘 시키던 할아버지. 그날도 세 병을 사다 달라는 걸 영욱은 한 병만 사온다. 할아버지는 ‘치사한 표영욱’이라고 하면서도 영욱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하고 잠이 든다. 본인의 죽음을 예상한 듯 손자에서 무섭다며 손을 잡아달라고 한 날 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영욱에게 자신이 죽으면 장롱 속에 있는 상자를 꺼내서 아버지에게 전하라는 말만 남기고.

표시한 옹이 상자에 남기고 간 것은 수의다. 그런데 수의가 여자 수의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꼭 여자로 태어나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편지와 함께. 초등학교 6학년 영욱이의 눈으로 본 장례식은 의문투성이다. 옆방에는 화환이 많은데 할아버지 장례식장에는 화환이 왜 적은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돈 걱정하는 아빠.

어느 순간 장례가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면 완성되는 물건이 된 것 같은 현실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안에는 할아버지와 영욱이만의 비밀과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승에서의 삶을 소풍에 비유했던 천상병 시인은 죽음이 기뻤을까?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나의 죽음도,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도. 죽음이라는 마지막 이벤트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두려움. 그 두려움에게 당당히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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