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여우 생태가 궁금하면 ‘동물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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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여우 생태가 궁금하면 ‘동물원으로’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02.23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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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서식지 밖에서 보전하는 서식지외보전활동 시작

! 고릴라다! 매표소에서 매표 업무를 하다 보면 왕왕 듣는 말이다. 반 정도는 관람 온 어린이들의 목소리고 나머지 반 정도는 그들의 아버지들이다. 청주동물원 매표소 옆 입구를 들어서면 눈에 잘 띄는 롤랜드 고릴라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SNS로 청주동물원을 다녀간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아이보다 아빠가 신났다는 얘기,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온 동물원이 즐거웠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동물을 만나는 건 어린이들에게만 국한된 즐거움은 아니다. 망보는 미어캣과 눈을 맞추는 것도, 잠자는 여우의 흉강이 팽대됐다가 축소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관찰 본능을 충족해 준다. 예로부터 사물을 관찰하는 본능은 생존을 위한 자질이고 관찰한 내용에 대한 분석은 과학의 원시적인 모습이다. 그러므로 동물원은 과학의 본산이라고 생각한다.

 

미어캣
미어캣

 

서식지에 대하여

 

관찰과 분석을 밥 먹듯이 반복해온 사람은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산에서 흘러오는 물에서 이물질을 거르고, 콘크리트를 발명하여 땅을 균일하게 덮어 이동을 편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공유하여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를 통해 지저분한 물을 마시거나 부주의하게 걸어 다니다가 넘어져서 도태됐을 사람들은 구제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터전을 묘사해 보자면, 단단한 땅 위에 곧고 높은 건물들이 반짝이며 견고하게 솟아있고 땅속엔 관을 통해 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안의 모든 공간은 서식자인 사람들의 의식주를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옷 가게, 식료품점, 아파트 등 모두 이렇게 단단하게 만든 도시 안에 형성돼 있다.

이제 콘크리트로 뒤덮이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야생동물들의 터전을 묘사해 보자면, 향이 좋은 건강한 흙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나 열매를 맺기도 하고 은신처를 형성하기도 하며 복잡한 환경을 조성한다. 이렇게 복잡한 환경의 틈새 틈새마다 서로 다른 동물들이 주변 자원을 사용하며 산다.

깔끔하게 포장된 도보를 안심하고 걸을 땐 필자도 고마움을 느낀다. 기분이 과하게 좋은 상태로 걷다가 종종 넘어져 본 경험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수십 킬로에 달하는 사람들이 밟아도 끄떡없는 단단한 도보가 있고, 그 아래 땅속엔 정화된 물이 관을 통해 흐른다. 땅을 파서 몸을 은신하고 지상을 흐르는 물을 마시며 사는 대부분 야생동물은 이런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다. 한여름의 뜨거운 뙤약볕을 맞닥뜨려도 물 한 방울 얻을 곳도 없다. 청주라는 도시에 사는 우리 동물원 친구들이지만, 바로 옆 동네 금천광장에라도 놓이게 된다면 그들이 겪게 될 절망과 공포는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곧 꽃샘추위가 지나면 선선한 봄이 올 것이다. 외투를 입지 않고 아침 공기를 맞이하는 날이 올 것이고 동물원 초입에는 벚꽃잎이 장막을 이루며 날릴 것이다.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는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 그때도 역시나 청주시 도로사업본부에서 관리하는 도로를 달려 출근할 것이고 깨끗한 물로 달달한 차를 끓여 마시면서 춘곤증과 다툴 것이다.

붉은여우
붉은여우

 

야생동물 보전

 

그러나 계절이 돌아와도 야생동물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동식물들을 위해 사람들은 서식지외보전활동(Ex-situ conservation management)을 시작했다. 서식지외보전이란 본래 서식지에서 보호가 어려운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서식지 밖에서 보전하여 궁극적으로 야생 복원을 추진하는 활동을 말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이어져 환경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서식지외보전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주동물원은 지난 2014년에 환경부에서 세 번째로 지정한 서식지외보전기관 동물원이 되었다. 청주동물원도 동물들에게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여 사육하며 유전형질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동물원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대중매체 영상처럼 움직이는 동물들을 가림 없이 보고 싶어 한다. 사람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동물들의 실제 자연스러운 모습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보다는 천적의 시선을 피해 은신하는 모습이 더 흔하다. 동물원은 대중매체에서 쉬이 다루지 않는 동물들의 실제 생태까지도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붉은여우들이 잠자기 좋아하는 수풀엔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미어캣이 빠르게 달려 은신할 수 있는 동굴이 얼마나 작은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또 천적이 없는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온몸을 드러내고 잠을 청하는 높은 바위도 볼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다. 호랑이사 앞에서 호랑이들 위로 펼쳐진 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시야는 청주동물원내에서 손꼽는 경치 중 하나다.

동물원은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서 동물들이 자연스러운 생태의 모습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야생은 와글와글 움직이는 영상에 익숙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선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관찰력과 인내심이 성장하면 동물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역동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동물들의 자연적인 모습을 존중할 수 있는 인내심과 존중이 충분한 사회가 우리의 서식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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