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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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 승인 2022.0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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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몸 상태 살필 때도 긴장하지 않도록 노력

동물원은 공원이고, 공원으로 가는 길은 출근 일지라도 기분이 좋다. 그림자가 진 아침, 호랑이사의 바위에 호랑이가 우뚝 서 있다. 무심한 표정으로 숨을 편안하게 쉬고 있다. 골반과 갈비뼈의 윤곽은 근육으로 잘 덮여있다. 정상 범주다. 눈에 보이는 호랑이의 몸을 부위별로 구분짓고 자세히 본다. 털 사이에 핏자국은 없는지, 털이 모난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 부위는 없는지. 눈을 마주치면 고양이 키스를 날려가며 눈도 자세히 본다. 더 자세히 볼 만한 구석이 없으면 방사장 땅을 훑어보며 어제처럼 스라소니사로 올라간다.

동물병원에서는 건강검진 시 동물의 호흡을 관찰하고 근육량을 평가한다. 그리고 온몸의 털을 들춰가며 피부 표면을 보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몸의 촉감과 형태를 확인한다. 그 다음 눈, 귀 그리고 이빨을 자세히 본다. 꼬리도 손으로 들어 항문 주위를 확인하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펼쳐 보면서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옆으로 뒤로 눕혀가며 정확히 평형을 맞춘 자세로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 프로브(초음파 송수신 손잡이)를 몸에 밀착하여 체내 장기들을 검사한다. 혈액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협조를 잘해준 아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나누고 보호자에게로 다시 인계한다.

청주동물원이 사육하는 호랑이
청주동물원이 사육하는 호랑이

 

 

동물들에게 마취를 해야 할 때

 

동물원 동물들은 일반 반려동물 수준의 검진을 하려면 대부분 마취를 해야 한다. 사육사나 수의사의 살을 쉽게 구멍 낼 수 있는 발톱을 가진 맹수도 그렇고, 사람에게 위협을 느껴 온몸을 던져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초식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50g도 채 나가지 않는 작은 새들의 격렬한 투쟁도 뼈가 부러지도록 멈추지 않는다. 좋게 좋게 설명하거나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도 반려동물과 다른 야생동물들은 설득할 수 없다.

마취는 생체 기능을 저하시키는 약을 사용하여 수면 상태에 빠뜨리는 처치이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따른다. 게다가 나이가 많은 동물이 마취 대상이 되는 경우엔 늘 보수적으로 마취를 결정하는 편이다. 만약 노화로 인해 체내 장기가 마취약을 충분히 해독할 수 없는 상태라면 마취 회복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오는 동물병원에서는 항상 마취 전 검사로 혈액화학검사와 영상 촬영을 진행하는데 이것은 바로 동물의 그런 해독 기능을 담당하는 장기들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반면 동물원의 동물들은 마취 전 검사를 하기 위해 피를 뽑으려면 마취를 먼저 해야 하는 역설에 봉착한다. , 마취 전 검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여러 활력 징후(Vital sign) 항목 중 하나인 호흡수라도 자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원 동물들은 수의사와 함께 살지만 동물병원 로비에 사는 느낌이다.

수의사는 진료실 문의 창문에 눈만 내밀고 환자를 보고 있다가 1년에 한 번 진료실로 부르기 위해 마취를 한다. 물론 긍정강화 훈련(강화 자극을 반복적으로 부여하면서 동물들의 특정 행동을 유도 또는 제거하는 훈련)을 응용해 마취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검사를 늘려가는 친구들도 있다.

청주동물원이 사육하는 사막여우
청주동물원이 사육하는 사막여우

 

수의사의 눈길

 

호랑이가 고양이키스를 이해하는지는 사실 모른다. 그저 호랑이도 고양잇과니까하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끔뻑거리는 것이다. 고양이키스란 반려동물인 집고양이가 신뢰가 충분히 쌓인 인간에게만 표현하는 행동으로, 두 눈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뜨는 행동을 말한다. 마치 눈 감은 얼굴을 보여주는 듯한 표현으로, ‘너와 함께 있을 때 난 눈을 감고 있어도 편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끔뻑거리는 나의 노력에도 여느 때처럼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호붐이는 뭐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눈을 잘 맞춰주는 이호는 그저 내 눈을 응시하면서 내가 걸어오며 몰고 온 공기의 냄새를 맡는다. 내 시선을 불편해하지 않으니 됐다.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홍성현 청주동물원 수의사

동물 친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수의사로서 몸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피는 내 시선은 정작 그들의 입장에서는 약점을 찾는 천적의 시선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시선을 주변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눈을 연신 깜빡거리면서 관찰하면 친구들이 덜 긴장할 거라고 스스로 타협한다. 어쩌면 눈알을 쉴 새 없이 굴리는 사람이 나타난 게 더 무서울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반응을 살펴 가며 뒷걸음질로 거리를 더 늘리기도 하고, 주변 나무를 한참 응시하기도 하면서 나의 방문에 익숙해지도록 기다리곤 한다.

같은 날 오후 몇 주전 수술했던 사막여우의 재진을 위해 사막동물사로 내려간다. 관람로와는 단절된 뒤쪽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 체구가 작은 사막여우 친구와 마주한다. 최근 여러 차례 진료를 받은 친구여서 잔뜩 경계하는 눈치다. 이번엔 붙잡히면 크게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막여우의 생각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물론 사육사의 보정은 완벽하다. 동물도 사육사도 수의사도 다치지 않게 환자를 제압한다. 수술 부위를 소독한 후 새 붕대로 다시 감아주고 처치를 마치면, 사육사는 사막여우가 안전하게 도주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한 후에야 조심스레 손을 놓는다.

사무실에서는 오늘의 진료부를 작성하고 약품의 재고 현황을 기록한 후 퇴근을 준비한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담요 덮고 둘러앉아 구운 감자를 먹으며 다큐멘터리를 보던 일상이 있었다. 화면속 호랑이의 얼굴은 무척 상세했고 생동감이 전해져 눈을 뗄 수 없었다. 동물원 근무를 하면서 호랑이의 얼굴을 자주 보고 있다. 그러다가 월급날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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