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하면 직지빵, ‘맥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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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하면 직지빵, ‘맥아당’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5.24 08: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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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년 ‘직지’철학 담은 청주 대표빵
제빵왕 김탁구의 원조 나병일 대표

2019 숲속책빵은 ‘숲속에서 빵 먹고 책 보고’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숲속책빵’은 지역의 젊은 빵쟁이와 서점지기들의 등불이 되기 위해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골목에서 대형프랜차이즈와 경쟁하는 업체들이다. ‘숲속책빵’에서는 이들이 한데 모여 유기적으로 교류한다. 이번호에서는 숲속책빵에 참여하는 청주 대표빵집 ‘맥아당’의 숨어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맥아당’ 나병일 대표 /육성준 기자

 

목숨 걸고 배운 빵

 

나병일 맥아당 대표는 전북 임실 출신이다. 1992년 청주로 이사 와서 1993년 맥아당을 인수해 지금까지 좋은 빵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빵을 만들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초코파이로 유명한 전주 풍년제과에서 4년간 먹고 자며 빵을 배웠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무렵 더 큰 물에서 놀아보자며 부산의 한 제과점으로 제빵 유학을 떠났다. 이후 부산에서 만난 제과점 선배를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당시 워커힐호텔에서 일하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던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를 다녔다. 졸업이후 그 때 3대 베이커리라고 불리던 나폴레옹제과에서 1년 정도 일했다”고 회상했다.

70년대 말부터 맛있는 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빵집들이 뜨기 시작했다. 서울 3대 베이커리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로 ‘나폴레옹제과점’, ‘리치몬드제과점’, ‘김영모제과점’ 등이 특색 있는 마케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요즘 트렌드와 비슷하다. 이들 빵집은 대량생산하는 업체와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장인정신을 강조했다. 일찍부터 우리밀 등 건강한 재료를 사용해 사람들의 입맛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제빵사들에게 이 곳들은 취업희망 1순위였다.

나 대표는 제빵사로 그 길을 걸었다. 18세에 불과했지만 5년여 동안 타지에서 죽기 살기로 빵을 배워 실력을 인정받았고, 그가 빵을 처음 시작했던 ‘전주 풍년제과’의 부공장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창업과 비디오가게 ‘산딸기’

 

19세 때 그는 모은 돈을 털어 전주 송천동에 송천제과를 열었다. 부인을 만났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3년여를 열심히 살며 번 돈으로 서울 사당동으로 자리를 옮겨 ‘크리스탈제과’를 열었다. 하지만 홀로 빵집을 운영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빵을 만드느라 아침, 저녁으로 가족들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나 대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비디오가게가 쉽고 재미있게 돈 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 접고 비디오가게를 열어 쉽게 돈 벌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당동에 ‘산딸기’라는 비디오가게 체인회사가 있었다. 그는 친구가 살던 부평시에 지점을 냈다. 그는 “영화도 보고 돈도 벌고 빵쟁이에 비하면 편한 나날이었지만 마음한편은 허전했다. 그러던 차에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둘째가 막 태어난 시점이어서 겸사겸사 처형이 있는 청주로 이사 왔다. 청주에서는 비디오를 차에 싣고 매장을 돌며 수거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1993년. 나 대표는 선배 친구의 소개로 사직동 터미널 사거리 맥아당이 매물로 나온 걸 알게 됐다. 맥아당을 보고 첫눈에 반한 그는 주머니에 있던 돈 100만원을 털어 바로 계약했다. “이름, 가게 위치, 그리고 빵에 대한 갈망,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권리금 5000만원에 보증금 1000만 원의 비싼 가게였는데 우선 사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맥아당’ 그리고 ‘직지빵’

 

빵 외길인생에서 잠시 외도를 거치고 난 뒤여서인지 그는 즐겁게 빵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가족들이 모두 ‘맥아당’에서 함께 일했다. 점차 자리를 잡아 1995년부터 학교급식에 찹쌀꽈배기, 팥빵, 식빵 등의 맥아당의 대표 빵들을 납품한다.

그의 인생스토리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김탁구’라는 이름 석 자에는 그의 아픔이 서려있다. 본래 김탁구의 삶은 그의 삶이었다. 나 대표는 “제작진이 찾아와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후 극화된 김탁구의 성장기는 나의 일생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내 이야기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변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방황했고 우울증도 앓았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돌파구를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청주를 대표하는 빵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어느 날 당시 한범덕 시장에게 직지를 모티브로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했다. 한 시장은 곧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지빵’이 탄생했다.

현재 ‘직지빵’은 하루에 1500개가 팔린다. 학교 급식으로, 또 타지로 업무를 보러 가는 직장인들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 대표는 “밀가루 대비 보리가루가 20%정도 되다보니 요즘에 쉽게 찾을 수 있는 맛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마니아층도 형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우울증의 돌파구로 시작한 ‘직지빵’은 어느덧 청주를 대표하는 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청주직지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한다. 그는 “직지빵을 지역 특화농산물인 청원생명쌀을 이용해 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청원생명쌀로 만들 만한 고품질 쌀가루가 없다”며 “하나씩 준비해서 청주 대표 먹거리 청원생명쌀을 이용한 다양한 빵이 탄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나 대표 가족과 직원들은 함께 맥아당에서 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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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범 2019-05-29 15:24:00
언제 청주가서 필히 맛을 보아야 겠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하시기 바랍니다.
www.winenliquor.co.kr 임형범 배상
리치몬드 권회장님도 잘 아시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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