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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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고집
  • 충청리뷰
  • 승인 2019.05.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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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고집이 훨씬 세다”

요즘 복귀논란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양정철이 지난 18일 ‘노무현 서거 10주기 시민 문화제’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이다. 노무현과 문재인 중에 누가 더 고집이 센가라는 질문에 즉석으로 나온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토를 달았다. “노 대통령은 겉으로는 굉장히 강하지만 속으로는 여리고 섬세한 분, 문 대통령은 겉으로는 되게 섬세하고 여린 분 같은데 속은 훨씬 더 불이 있고 강하고 단단한 분이다.”

문재인의 최고 복심이라는 사람이 한 발언이니 물론 좋은 의미로 해석됐다. 이 말을 뉴스검색으로 접하는 순간 몇 가지가 언뜻 떠올랐다. 우선 황교안을 앞에 놓고 “독재자 후예가 아니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말한 같은 날의 광주 5.18기념식이다. 이날 광주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무릅쓰고 그야말로 사선을 넘어 어렵게 행사에 참석한 황교안에게는 이보다 더 잔혹한(?) 말도 없을 듯 싶었다. 국민들에겐 적폐청산에 대한 의지가 더욱 더 강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는 수구언론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제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자세다. 그동안 언론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의 그 숱한 어깃장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없이 소주성(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으로 상징되는 정책들을 곧추세우고 있다. 여간한 뚝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얘기다. 양정철이 말한 문 대통령의 고집은 이런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보수언론의 경제에 대한 진단은 이른바 팩트체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시중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경제에 대해서는 총체적인 합격점과 호평을 받은 적이 없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계략 즉 정략(政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은 문 대통령과 대학 고시반에서 동고동락한 이들의 얘기다. 개인적으로 이들 중 한 두사람과 친분이 있다보니 학생 시절의 ‘인간 문재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경남고 수석 입학, 재수, 서울 종로학원 수석, 가정형편으로 4년 전액 장학금 혜택의 경희대 지원, 유신과 전두환 독재에 맞선 시위, 강제입영, 특등사수로 특전사 차출과 최우수 특전사 2회 수상, 수감중 감옥에서 고시 최종합격, 사법연수원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 수상, 시위전력으로 판검사 임용좌절, 유명로펌 영입 거절 후 낙향, 노무현과 운명적인 만남 등 등이다.

이러한 이력만 봐도 문 대통령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정작 국민들이 이를 실체적 사실로써 확인한 계기는 따로 있다. 2009년 5월 23일, 30년 동반자인 노무현의 서거소식을 공식발표하는 순간에도 조금도 감정의 동요가 없던 모습, 이후 영결식장에서 MB를 향한 백원우의 ‘살인자’라는 고함에 대신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사과하던 장면 등이다. 영결식이 끝나고 혼자 한없이 오열했다는 소식은 그 뒤에 전해졌다. 사실 국민들은 그 때 이미 문재인을 차기 지도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고집’을 놓고 이처럼 얘기를 중언부언 길게 끌고 가는 이유가 있다. 지도자의 덕목이라는 것을 한 번 같이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어느 직업이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격이나 생활방식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단 한 개라도 남들과 비교되는 이채로움과 비범함이 있다. 대성한 기업가가 씀씀이에는 너무 계산적이고 인색하다든지 혹은 성공한 정치인이 막상 대중 앞에서는 수줍지만 인간적 교감을 잘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굳이 ‘고집’으로 얘기한다면 주변의 어떤 작은 조직도 이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에겐 분명 유별난 점이 있다. 그러기에 요즘 유행하는 성공학에선 지도자의 고집을 ‘독재자 근성’으로까지 해석하기도 한다. 남을 설득하고 줄을 세울 줄 아는 강한 신념과 카리스마가 요구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 있게 조직을 리드한다는 건 그만큼 선의적이든 악의적이든 자기만의 강한 독자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역할과 기능의 사회적 인정 여부를 떠나 이른바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은 언론사의 뒤엔 반드시 리더의 고집과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어쨌든 양정철의 발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고집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겉으로는 섬세하고 여리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강하고 단단하다는 사실을 이제 측근들만이 아닌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이다. 문재인이 ‘운명’임을 내걸고 대권에 도전했을 때도 대학 고시반의 옛 동료들이 처음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은 “절대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였다. 겉으로 보이는 순한 성격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시위할 것을 외치다가 외면받자 혼자 구국선언문을 만들어 거리로 뛰어들던 문재인을 기억하며 정의와 옳은 일에 대한 그의 ‘집념’을 얘기하고 있다.

생방송되는 인터뷰에서 ‘독재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질문을 받고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던 문 대통령이 5.18기념식에선 적폐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재차 강조했다. 심판을 받아야 할 악(惡)의 역사에 대해서는 ‘적당히’가 없음을 분명히 못박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5.18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제주 4.3사건 등 국가권력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신원(伸寃)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치부역자와 전범들을 끈질기게 찾아내 악착같이 처벌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선진국이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치하를 벗어난지 74년이 되었건만 지금도 여전히 친일후손들의 세상이다. 그들이 정치를 하고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국가의 기득권을 독차지한 채 최저임금을 내리고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조상의 빽과 부모의 특권 덕에 군대도 안 간 그들이 끊임없이 북한팔이로 전쟁불사를 외치며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문재인의 고집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 것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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