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 나올법한 시골의 작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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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에 나올법한 시골의 작은 학교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1.1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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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어르신 인터뷰하는 ‘위대한 평민 프로젝트’ 올해도 시행
귀농‧귀촌인 자녀들이 모인 학교…삼주체가 이미 학교변화 원해

괴산 송면중학교는 전교생인이 28명인 작은학교다. 송면중이 행복씨앗학교를 신청한 것은 2017년. 학부모들이 먼저 행복씨앗학교 신청을 독려했다. 귀농, 귀촌한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인 송면중에선 이미 마을이 ‘학교’였고 이웃이 ‘교사’였다.

송면중은 지난해부터 마을 어르신들의 생애를 전교생이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는 ‘위대한 평민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소녀와 할머니의 공기놀이>책을 펴냈다. 이를 통해 학교와 주민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됐고, 어르신의 생애사를 기록하면서 아이들 또한 삶에 대한 사고의 폭도 커졌다. 어쩌면 잊힐 수밖에 없는 개인사를 통해 지역의 이야기, 굴곡진 현대사의 모습들이 오롯이 드러나는 작업이었다.

김명희 행복씨앗학교 운영부장은 “책 제목이 왜 <소녀와 할머니의 공기놀이>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한 아이가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난 뒤 공기놀이를 같이 했는데 할머니가 이겼다고 했다. 둘 다 공기에는 자부심이 컸는데, 대결을 한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재밌고 웃음이 났다. 지금은 솔직히 이 프로젝트가 유명해져서 부담도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마을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구술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동네에 ‘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그러다보니 올해는 인터뷰 대상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 학교운영위원인 솔뫼농장 김용달 씨에게 부탁을 했더니 마을 이장들과 연락을 해서 ‘목록’을 보내줬다. 지난주엔 학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학생들이 상견례도 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김 부장은 “처음에는 본인 얘기하는 것을 꺼리시다가 나중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도 털어놓으셨다. 인민군 형들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동네에서 쫓겨다녔던 한 할아버지는 지금은 보수단체의 장으로 활동한다. 어떤 할머니는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데 이렇게 학생들이 와주었다고 고마워했다. 인생사에 녹아진 슬픔, 아픔을 들으면서 아이들도 성숙해지는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은 학교의 조그만 활동인데 어르신들의 인생에 큰 기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할머니는 마을회관에 가서 책이 나왔다고 술값을 쏘셨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뭉클했다. 할머니는 낙오자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얘기를 들어주고 책까지 내준 게 고맙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송면중의 북카페엔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모여 놀기도 하고, 책도 읽는다. 한달에 한번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하는 독서토론회가 열린다. /사진 육성준 기자

서로 정말 잘 아는 ‘친구들’

 

송면중의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한 교실에서 컸다. 유‧초‧중학교 동창들이 많다. 최산(2학년) 학생은 괴산에 4살 때 와서 6살까지 살았다가 다시 서울에 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엄마와 오빠 손을 잡고 이곳으로 왔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지금도 서울에 산다. “여기가 더 좋다. 좀 더 마음이 편안하다. 유치원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지금도 같은 반 친구들인데 솔직히 그때는 어려서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왔을 때 마을 분들이 나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과 교사들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이다. 그래서 좋다.”

산이는 “할머니 자서전 쓰기를 할 때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했는데 3~4번 가서 만나니 나중에는 정말 친해지게 됐다. 무언가 함께 하는 기쁨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손지(2학년)학생은 청주 수곡초를 다니다가 2학년 때 전학을 왔다. 부모님이 귀농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은 거의 모든 게 재미있다. 수요집회에 간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서대문 형무소도 가봤다. 세월호 참사 유족의 강연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남궁승(2학년)학생은 “어릴 적부터 같이 생활하다보니까 전날 싸워도 화해하기가 쉽다”고 했다. 정주원(2학년)학생은 “몇 년을 같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잘 챙겨준다. 끈끈한 정이 있다. 반 아이들과 같이 캠프 갔을 때 정말 좋았다”라고 말했다.

 

폐교위기 학교, 대안을 찾다

 

송면중은 좋은 소나무가 학교 내에 많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도 교정에서 소나무 향이 난다. 괴산과 상주 경계에 있는 학교는 폐교위기(60명 이하)에 놓였지만 학생 수는 항상 적정수를 유지한다. 괴산 인근 학교들의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다. 면소재지가 아닌 자연마을에 중학교가 있는 곳은 충북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김상열 송면중 교장은 “이곳은 천국이다. 학교 정문에 서서 아이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3년 동안 성장한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송면중은 행복씨앗학교를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학부모, 교사, 학생들 모두가 준비돼 있다. 도시의 큰 학교에서 행복씨앗학교를 실현하는 게 더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원래 행복씨앗학교 자체가 폐교위기의 작은학교에서부터 시작됐다”라고 설명했다.

김명희 행복씨앗학교 운영부장은 “학교 안에서 민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작은 학교이다보니 오히려 교사들의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학교 운영에 따른 업무를 적은 수의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씨앗학교가 성공하려면 효율적인 업무분담 및 회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한 달에 한번 다모임을 개최한다. 아이들 스스로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다. 학생자치 활동이다. 학교 이야기를 담은 ‘솔맹이 신문’도 발행하고, 지역주민들과 솔맹이 마을 축제도 열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해엔 원탁토론을 통해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도 했다. 학부모들은 한 달에 한번 학교 내 북카페에서 책 읽고 토론회를 연다. 부모와 아이들, 교사들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다.

교사들은 2주에 한번 회의를 한다. 김 부장은 “학생들은 우리학교가 행복씨앗학교인지 잘 알지 못한다. 늘 해왔던 활동들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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