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되는 충북의 격(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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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는 충북의 격(格)
  • 충청리뷰
  • 승인 2018.08.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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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속에서 그래도 도민들에게 기쁨을 준 것이 두가지 있다고 한다. 경로당과 프로야구팀 한화다.

우리나라에서 동네 경로당이 올해처럼 핫 프레이스(hot place)로 뜬 적도 없다. 도시는 물론 시골마을에서조차 여름 내내 최고의 화제거리가 됐다. 전기료가 걱정되는 가정집에 비해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 수 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곳 곳의 경로당이 나이든 사람들의 피서에 최고 적소가 됐다. ‘경로당캉스’라고 불릴 정도다.

요즘 한화에 푹빠진 도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충청도 연고팀이기에 이전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었지만 올 여름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한화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퇴근을 서두르는가 하면 사석을 일찍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순위 2, 3위를 다투며 실로 오랜만에 가을야구 진출을 가시권에 둔터라 한화의 경기는 팬들에게 그야말로 ‘마리한화’가 되고 있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화를 추락시킨 감독의 국가대표라는 김응룡과 야신 김성근으로 인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도민들이 모처럼 한용덕의 맏형같은 표정에서 힐링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가뭄에 콩나듯하는 한화의 청주경기를 볼 때면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다. 경기장 수준뿐만이 아니라 같은 충청권이면서도 마치 서자취급을 받는 것같은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순수하게 충북만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더욱 간절해진다.

마침 엊그제 청주시티FC와 청주FC가 내년 통합을 선언하며 프로축구팀 창단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이 네 번째 시도다. 청주를 연고로 하는 3부 리그팀이 두 개나 있는 것도 불편하지만 지난 십수년동안 프로축구팀 창단에 대한 말만 무성했지 뭐 하나 제대로 성사된 게 없는 지역의 현실이 더 안타깝다.

2년전 2부 리그로 강등되고서도 현재 성적부진에다 팬들의 외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대전시티즌의 사례를 보면 프로축구팀 창단을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말잔치만 벌여온 충북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강원과 제주에도 있는데 왜 충북엔 없냐”라는 자학과 냉소가 늘 귓가에 맴도는 것이다. 프로팀 창단에는 대개 지역연고의 기업체가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북에도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이 자꾸 오버랩된다.

사정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해당 지역의 역대 자치단체장 책임이 절대적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추동해서 이끌어 갈 능력이나 도량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엔 스케일의 문제인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충북의 스케일, 즉 위상이 알게 모르게 많이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오창이나 오송, 바이오 등으로 상징되는 굵직한 정책 사업은 실종되고 대신 일회성 행사나 이벤트가 마치 앞으로 지역사회를 먹여살릴 것처럼 포장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들 한다. 말장난을 지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치단체와 지역국회의원들이 중앙을 상대로 함께 만들어내는 이른바 시너지 효과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효과에 힘입어 무슨 규모화된 정책사업이나 예산을 따왔다는 뉴스를 요즘엔 본 적이 없다. 도내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의 만남 또한 다분히 면피 내지 형식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격(格)이 떨어지는 것이다.

며칠전 발표된 충청타임즈의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목격됐다. 도민 77.8%가 국회의원의 물갈이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유로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지역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기는등 역할부재가 크다는 것이다. 지난날엔 이같은 질문에 40~50%만 나와도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로라면 도내 8명의 국회의원중 6,7명은 2년 후 총선에서 퇴출될 판이다.

충북의 격이 떨어지는 일은 근자에 언론에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각급 자치단체장의 동향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산확보를 위해 중앙에 올라가 누구를 만났다는 뉴스가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나온다. 도지사는 물론이고 시장군수들이 모두 이 행렬(?)에 기를 쓰고 나서고 있다. 졸지에 지역출신 장관이나 고위관료들은 기념촬영의 단골이 됐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맥을 통한 정부예산 확보는 다분히 로비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로비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게 정답이다. 보란 듯이 사진을 찍고 또 이를 언론에 보도하는 것은 다른 경쟁 자치단체에게 패를 까 보이며 투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색을 내는 것도 유분수지 그 치졸함이 참으로 촌스럽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상대로 타 지역에 비해 충북이 유독 유별나다. 결과물이 없다면 결국 자치단체장은 참모들을 대동하고 쪼르륵 올라가 서울구경만 하는 꼴이 된다.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서 면담했다는 낯간지러운 기사가 아닌 실제로 예산을 확보했는데 이러이러한 뒷얘기가 있다는 식의 추적기사를 보고싶은 것이다.

과거 이명박은 나라의 ‘품격’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러면서 툭하면 외유에 나서고 G20 정상회의 유치등 국제 이벤트를 벌이며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자·방 비리로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고 자신은 영어의 몸이 됐다.

격(格)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나부터 정직해야 하고 그 것을 주변인들과 공유해야 하며 또 이를 통해 인정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지금, 충북의 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이 것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결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은 지역사회의 보편적 문화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한화가 지금처럼 도민들에게 계속 기쁨조가 뒤기 위한 노하우 역시 정직밖에 없다. 감독은 선수들을 믿고 선수들은 감독을 신뢰할 때만이, 과거처럼 누구를 혹사시키고(김성근) 또 누구를 편애하면서(김응룡) 자의적으로 팀을 이끌다가 끝내는 허망하게 무너지는 험한 꼴은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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