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친숙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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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친숙해서 더 좋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2.0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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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삶이 엮여 있는 훌륭한 식재료

아버지께서 칠순도 훌쩍 넘은 나이가 되시고 나서는 몸도 마음도 많이 쇠약해지셨다. 그래도 평생을 해오시던 농사만은 손 놓지 못하시고 아픈 몸 이끄시며 짓는 농사가 콩 농사다. 예전에 두부는 우리 집 별미 음식이었다. 어머니께서 식구들이 특별한 것을 찾는 눈치를 보내면 어김없이 “이 귀찮은 걸 왜 자꾸 찾느냐”고 타박하시면서 만들어 주신 게 두부다.

두부는 너무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싼 식재료다보니 그만큼 익숙하기에 특별한 음식으로 두부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두부라는 게 농사짓고 요리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삶들이 엮여 있는지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제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는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린다. 북한의 전격적인 참여를 계기로 평창올림픽은 어느새 평화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하고 오직 정치권력에 대한 탐욕만 내세우는 몇몇 세력에게는 평양올림픽이라는 색깔론으로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국사회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민족과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국제경기에 대한 환상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이루었다는 자기만족적 서사들이 만연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가난했던 일상 기억나는 두부

1월 29일 저녁 공룡의 마을까페 이따에서는 2018년 첫 행사로 찾아가는 워크숍 “NO OLYMPICS-올림픽 재해는 필요없다 ”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국제적인 거대스포츠 행사에 매몰되면서 놓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삶과 자연의 파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평창에서도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에서 쫓겨나는 사람들과 단 16일간의 행사를 위하여 수백 년 된 원시림을 밀어버리는 생태계 파괴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자리였다. 올림픽이라는 것이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거대 자본을 중심으로 막대한 돈벌이 도구로 전락한 만큼 그 폐해도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지역과 국가와 사람들의 삶들을 파괴하는 국제적 범죄행위라는 것을 살펴보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생각해보면 올림픽이 보여주는 논리와 폐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관철된다.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만을 지어온 농부들은 소위 경제적 가치에 따라 희생을 강요받아왔을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인 농지와 마을에서 쫓겨나는 사회가 되었다. 평생을 가족과 친지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콩 농사를 짓고 뜨거운 가마솥에서 땀 흘리며 두부를 만들었던 우리 부모님은 그저 국가와 자본에게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것 때문에 버려진 사람들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농부의 삶 따위보다 짧은 기간 강력한 최면효과를 내는 대중적 기호들에 더 열광하느라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이 쫓겨나고 망가지고 있으며, 오래된 숲이 파괴된다는 사실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번 행사를 함께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요리를 할 때 가급적 별스럽지 않은 것들, 화려한 요리보단 일상의 생활일 것 같은 요리들로 준비했다. 밥은 부모님이 오창에서 농사지으신 무를 채썰어 씻은 쌀과 함께 만드는 무밥으로 정하고 채 썬 깻잎과 강판에 갈은 양파를 간장에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콩나물국과 함께.

정작 고민은 뒤풀이 메인 요리였는데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하자는 마음이 강했는데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두부였다. 두부는 어렸을 때 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익숙하게 요리하는 재료중에 으뜸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도토리묵과 함께 가난했던 우리 가족들의 일상을 기억하게 하는 식재료다. 워낙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올림픽 반대활동을 하는 이번 행사를 위해서는 왠지 두루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위 두부두루치기로 알려진 이 요리는 우리집 식탁에 자주 올랐다. 뭔가 오래도록 힘겨운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그나마 행복했던 어느 순간의 음식이랄까 ?

두부를 볶는 두부 두루치기

두루치기라는 것은 강한 양념을 베이스로 강하게 볶아내는 요리다. 따라서 두부 두루치기는 두부를 볶아낸 요리라는 의미다. 우리가 쉽게 접하게 되는 돼지 김치두루치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온전히 두부만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부 두루치기(왼쪽)와 무를 넣은 무밥.

이 요리의 핵심은 두부다. 두부를 맛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두부를 큼직큼직하게 깍두기처럼 썬 후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끓인 다시국물에 오래도록 데쳐 내는 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면 두부에 진한 다시국물 맛이 살짝 씩 배게 되는데 그 맛이 중요하다는 거다.

나는 이번에는 채식하는 친구가 있어서 멸치를 빼고 다시마로만 맛을 냈다. 그렇게 데치는 동안 양파를 채 썰어서 준비하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념장은 보통 고추가루, 고추장, 간장, 매실청, 설탕, 후추, 다진 파를 넣으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특별한 맛 비법은 고추장대신 고운고추가루를 넣으면 훨씬 맛이 난다는 거다. 장 특유의 텁텁한 맛 대신 깔끔한 칼칼함이 생긴달까? 그렇게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양파와 양념장을 넣어 볶다가 다시물을 넣어서 끓인 후 데친 두부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주면 완성된다.

두부 두루치기는 예전에는 흔했던 요리였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가난했던 그 시절엔 돼지고기가 없어서 남들처럼 고기 두루치기를 못해 먹었지만, 비슷한 양념으로 두부만 넣어서 만들었다고 하신다. 그 맛이 고기보다 나아서 그 시절 고기 살 돈 없던 지지리 가난한 소작농부였던 부모님들에게 그나마 못 먹는 서러움 따위는 갖지 않고 살아오셨다는 자부심을 안기게 해준 요리였단다.

그래서 이 요리를 할 때 마다 나는 생각한다. 농사짓는 부모님처럼 오래되고 익숙하고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해서 그들의 삶까지 함부로 버려지거나 희생을 강요당할 만큼 가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박 영 길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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